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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제102주년 3.1절 기념식

제작연도 2021-03-01

상영시간 24분 29초

출처 특별생방송

문재인 대통령 제102주년 3.1절 기념식

제102주년 3·1절 기념식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3·1독립운동이 시작된 역사의 현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3·1독립운동 기념식이 열리게 되어, 참으로 뜻깊고 감회가 큽니다.
102년 전 오늘, 이곳 탑골공원에서 민족의 회복과 도약이 시작되었습니다.
천도교, 기독교, 불교가 종교의 벽을 넘어 한마음이 되었고, 학생들이 민족대연합의 선두에 섰습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한 청년이 팔각정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낭독이 끝나자 만세 소리가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비폭력운동, 3·1독립운동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자유와 독립의 외침은 평범한 백성들을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 태어나게 했고, 정의와 평화, 인도주의를 향한 외침은 식민지 백성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함성이 되었습니다.

3·1독립운동은 식민지배의 수탈로부터 민족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 온 국민이 함께한 운동이었습니다.
3·1독립운동으로 우리는 식민지 극복의 동력을 찾았고, 민족의 도약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역경을 헤쳐 나가며 대한민국 역사의 반전을 이룬 자랑스러운 선조들께 깊은 존경을 바칩니다.


국민 여러분,

100년의 긴 세월이 흘렀지만, 국난에 함께 맞서는 우리 국민들의 헌신과 저력은 한결같습니다.
한 해를 넘긴 코로나의 위협에 우리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년, 국민들은 방역의 주체가 되어 대한민국을 지켜주셨습니다.
방역 요원과 의료진은 직업적 책임감을 뛰어넘는 놀라운 헌신과 희생을 보여주었습니다.

3·1독립운동 전 해, 일제의 무단통치와 수탈에 신음하던 1918년에도 ‘스페인 독감’이라는 신종 감염병이 우리 겨레에 닥쳤습니다.
당시 인구의 40%가 넘는 755만 명의 환자가 발생해 14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콜레라’ 역시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치명률이 65%에 이르렀고, 1920년에만 만3천500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제는 식민지 백성을 전염병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방역과 위생을 구실로 강제 호구조사와 무조건 격리를 일삼았고, 1920년 당시 의사 1인당 담당 인구수가 무려 만7천 명에 달했습니다.
그와 같은 척박한 의료 현실 속에서 의학도들은 3·1독립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경성의전과 세브란스의전 학생들이 탑골공원의 만세시위를 주도했고,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들과 세브란스의전 간호부 학생들 역시 붕대를 가지고 거리로 뛰쳐나와 동참했습니다.
체포된 학생들 가운데 경성의전 학생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가족과 이웃, 공동체의 생명을 지킨 것은 3·1독립운동으로 각성한 우리 국민 스스로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의료인들은, 독립운동으로 탄압받는 민족의 구호를 위해 상해에서 대한적십자회를 설립했고, 1920년에는 ‘적십자 간호원 양성소’를 세워 독립군을 치료할 간호사들을 길러냈습니다.

콜레라가 유행하자 전국 곳곳의 청년·학생들은 청년 방역단을 조직하여 무료 예방접종과 소독 등의 방역 활동을 벌였고,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열세 개 동, 3천여 가구가 연합 자위단을 조직해 콜레라에 맞섰습니다.
효자동을 비롯한 여덟 개 동 주민들은 전염병 병원 설립을 위한 조합을 결성했고, 1920년 9월 4일, 마침내 최초의 사립 전염병 격리병원 ‘효자동 피병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조선인이 지은 병원에서 조선인 의사와 간호사, 한의사가 전력을 다해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오늘의 코로나 상황에서 보면, 우리 스스로 우리 환자를 돌보려 했고, 우리 스스로 의료체계를 갖추려 했던 선대들의 노력이 참으로 가슴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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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특별생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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