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발발 .
-북한 공산군은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무력남침을 개시
-이날 서울시민들의 대부분은 북한 공산당의 무력남침을 38선도 선에서의 단순한 무력충돌로 생각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결의
-북한은 25일 하루 동안 문산, 의정부 등 38도선 부근 주요도시를 유린,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남침 3일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
-북한의 기습 남침 앞에서 우리 정부와 국군은 속수무책
-UN군 지상부대 부산 상륙(7. 1), UN군 지상부대의 부산 상륙을 시작으로 그 증원 부대가 속속 도착
-공산치하의 서울, 공산당은 양민 학살, 요인 납치, 인민재판, 약탈 등을 자행
-공직자와 그 가족들을 무참히 학살, 피난을 못간 종교인, 언론인, 문화예술인들을 인민재판에 회부,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킴.
-학병, 학생들은 책 대신 총을 잡고 전선으로 투입
-50년 8월 22일부터 국민병 소집을 개시, 52년 9월 1일 종래의 모병제에서 징집제를 도입
-유엔군은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함.
-맥아더 인천 상륙작전(50. 9. 15), UN군 제10군단, 이 작전의 성공으로 마침내 전세가 역전됨.
-서울 탈환(9. 28), 3.8도선 돌파(10.1), 양민들의 시체, 가족을 확인하려는 시민들.
-60만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국군과 유엔군 후퇴.
-흥남철수(12. 24), 공산치하에서 벗어나려는 피난민들로 큰 혼잡을 이룬 흥남부두
-10만여 피난민들은 목선, 돛단배, 널판지 등 물에 뜰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하여 흥남부두를 빠져나옴.
-1.4후퇴, 유난히도 추웠던 그 해 겨울, 북한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공산 치하를 빠져나옴.
-서울 시민들은 꽁꽁 언 한강을 건너 또 다시 피난길에 오름.
-열차를 타고 피난길에 오르는 피난민들
-전국에서 몰려온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룬 부산
-눈물의 피난살이가 다시 시작되고 포항 난민촌에서 바닷가에 천막을 치고 생계를 유지
-국제시장(군수품 노점상)의 모습, '40계단',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 유행
-부두하역 등 피난민들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생계유지
-피난학교, 전쟁 중에도 배움만은 포기 못하고 꺼질 줄 모르는 향학렬을 불태움.
출처 : 시련과 영광(광복50년기록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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