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윤리위원회 창립대회
1961년한국 신문 윤리위원회 창립식. -한국 신문 윤리위원회 발족. -김세완 위원장의 개회사, 신문윤리 실천 요강 낭독. -동아일보 사장에 의해 서약문 낭독. -통신사 대표들, 오른손을 들고 외침, 자유, 책임, 독립, 공정을 굳게 다짐. -윤보선 대통령의 격려사. -오재경씨, 정부로서도 자유로운 보도 활동 협조할 것을 약속.
상세보기제 2차 남북적십자 본회담
1972년남북 대화 -휴전선 전경 -한국전쟁이 남긴 휴전선 -전후의 혼란과 폐허를 딛고 일어난 대한민국 -북한이 대남 도발을 자행하기 시작 -전쟁을 준비하는 북한 -광복 25주년 경축사를 통해 평화통일을 위한 새로운 정책구상을 천명한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육성 "북괴에 대하여 더 이상 무고한 북한 동포들의 인생을 희생시키면서 전쟁준비에 광분하는 죄악을 범하지 말고 보다 선의의 경쟁, 즉 민주주의와 공산독재의 그 어느 체제가 국민들을 더 잘 살게 할 수 있으며, 더 잘 살 수 있는 여건을 가질 수 있는지를 입증하는 개발과 건설과 창조의 경쟁에 나설 용의는 있는가 묻고 싶은 것입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남북이산가족을 찾아주기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북한측에 제기 -남측의 제의를 수락하는 방송을 한 북한 -판문점에서 이루어진 5차례의 남북 접촉 -1971년 9월 20일 제 1차 남북 적십자 예비 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 -판문점에 대한적십자사 회담연락사무소 설치 -북한의 정치적 의도로 교착상태에 빠진 회담 -1971년 정치적 차원의 남북관계 개선 문제를 다루기 위한 남북고위급 비밀회담을 북한측에 제의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으로 평양으로 가 김일성을 만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상호 무력 도발 중지, 상대방을 비방하지 않으며, 민족적 단결을 도모하는 것에 합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김일성의 모습 -북한측의 박성철이 비밀리에 서울 방문, 남북공동성명 채택·발표에 합의 -1972년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공동성명이 동시에 발표됨. -자주, 평화, 민족의 단결을 조국통일의 원칙으로 한다. -상호간의 비방, 중상과 무력도발 금지 -다방면에 걸친 남북교류 실시 -남북적십자회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협조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직통전화 가설,운영 -위의 사항을 협의할 수 있도록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활기를 되찾게 된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본회담을 서울과 평양에서 회담을 번갈아 열기로 합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통해 북한을 방문하는 적십자사 일행 -평양, 대동강 회관에 도착한 적십자사 일행 -1972년 8월 30일 대동강 회관에서 제 1차 남북적십자 본회담 개최 -평양 관광을 하는 접십자사 일행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 지어진 혁명박물관 전경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 2차 남북적십자 본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북한 일행 -북한 일행을 환영하는 거리의 인파들 -1972년 9월 12일 조선호텔에서 열린 제 2차 남북적십자 본회담 -이산가족 대표 김옥길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의 축하 연설 -인도주의적 회담을 정치 선전장으로 전락시킨 북한측 대표들 -한국을 관광하는 북한측 대표들 -1972년 10월 24일과 1972년 11월 23일에 평양과 서울에서 열린 제 3차 및 제 4차 남북적십자본회담은 북한의 무리한 요구로 교착상태에 빠짐. -국가보안법 해제, 반공 활동의 금지, 반공 단체 해제를 요구하는 북한측 대표 -남북한 가족들의 추석성묘방문단 구성을 제의한 한국측 대표, 북한의 거절 -7월 4일 공동성명 합의에 따른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회의가 판문점과 평양, 서울에서 한차례씩 개최 -남북조절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관한 합의서 ㅕ? -남북조절위원회 안에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외교 분과 위원회를 두기로 함. -1972년 11월 30일 서울에서 남북조절위원회를 정식적으로 구성, 발족 -1972년 12월 1일 이후 서울과 평양에서 3차례 남북조절위원회 본회의 진행 -남측은 남북한 상호간의 사회개방을 제의 -외국군 철수와 군비 축소 실현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북한측 -1973년 8월 28일 남북조절위원회 회의에 더 이상 참석하지 않을 것을 표명한 북한 -남북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휴전선 밑에 기습 남침용 땅굴을 판 북한 -북한의 각종 무력 및 폭력 도발 행위 -중단된 남북대화를 되살리려는 남측의 노력 -1973년 12월 5일부터 다시 시작된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 회의, 1975년 3월 14일에 제 10차 회의를 끝으로 북한측에 의해 중단 -1973년 8월 28일에 북한 측의 대화 중단 선언으로 남북적십자사 회담 중단 -조청련계 재일동포 모국 방문단 한국 방문 -가족들을 만나 기뻐하는 재일동포 모국 방문단의 모습 -임진각에서 제사를 지내는 이산가족들의 모습 -판문점에서 8.18 도끼 만행 사건을 저지른 북한 -남북조절위원회 직통전화와 연락사무소의 직통전화를 단절한 북한 -1978년 3월 20일 판문점에서 개최하기로 되어 있는 제 26차 남북적십자 실무회의에 일방적으로 불참한 북한 -남북 대화를 위해 한국측에서 마련한 삼청회의소 전경 -1981년 1월 12일 통일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남북한 최고책임자 상호 방문을 제의한 전두환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의 육성 -1981년 6월 5일 제 1차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개최 -전두환 대통
상세보기월 포위츠 미 국무성 차관보 접견
1985년전두환 대통령, 월 포위츠 미 국무성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 접견, 좌담 -9월 12일 13일 모스크바에서 소련 외무차관과 미.소 회담 갖고 돌아가는 길에 들러 한반도 문제에 대한 결과 설명함. 전두환 대통령 제20회 전국 기능경기대회 입상자 127명 접견 -전두환 대통령 "기술혁신을 통한 품질향상과 국제경쟁력 강화에 힘쓰라"고 말함 -"기능인들은 긍지와 자부심 가지고 자기 분야에서는 세계 제 1인자가 되겠다는 결의로 실력배양에 힘쓰라"고 당부
상세보기국무위원 임명식
1958년국무위원 임명식이 9월 12일 거행됨. -최인규 교통부장관, 곽의영 체신부장관 국무위원 임명식. -신임 두 장관의 선서식. -대통령의 유시, 전 국무위원과 기념사진 촬영.
상세보기제 2회 세계한민족체전 개막식
1991년600여 년을 이어온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펼쳐지는 제 2회 세계한민족체전 -세계각국에 흩어져 살고있는 우리 동포들의 화합과 전진의 한 마당 축제인 제 2회 세계한민족체전 -서울, 잠실에서 열림. -전 세계 85개국에서 1,600여 명의 해외동포가 참가한 한민족 대화합의 축제 한마당 1991년 9월 12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막식이 펼쳐짐. -여성 사물놀이, 에어로빅 시범, 손에손잡고 합창 등의 식전행사 -선수단 입장식, 가장행렬과 퍼레이드 -세계해외동포 약 500여 만명과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동질성을 회복해주는 유래없는 우리 민족만의 축제이자, 한마당 잔치임. -개회선언과 대회기 게양 -김용식 위원장의 개회사, 박철언 장관의 환영사, 선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