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특별담화 발표
1965년박정희 대통령,학생들의 데모에 대한 특별담화 발표.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정일권 총리, 전국무위원, 치안책임자, 각대학 총.학장 참석한 가운데 한.일협정 관련 학생데모에 대한 특별담화, 학생들의 자숙을 촉구.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 문제는 단순한 외교문제가 아니라 두 나라 국민사이에 얽힌 과거의 감정을 청산하는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는 까닭에 정치인의 반대와 학생들의 데모는 그런대로 의의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정부는 이를 관대하게 용인하는 한편 일본과의 회담에 있어서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를 서명하게끔 했으며 -그러므로 회담 타결 이전까지 학생데모가 어느 모로나 회담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함. -그러나,회담이 성공적으로 타결되고 국회에서 비준동의까지 끝난 지금에 이르러서 불법적 반대행위와 데모는 이해할 수 없다. -학생 데모를 영웅시하고 그들을 선동함으로써 입신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는 기회주의 학자들이 민주정치를 그르치고 있다고 말함. -나는 대다수 학생, 대다수 정치인 그리고 대다수 교직자의 명예를 추락시키고 크게는 국가민족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암적
상세보기용산역에서 열린 군전용차량인 상무호 개통식
1955년오산기지에서 거행된 제1 고사포병여단 창설식. -약진 국군의 또 하나의 건설로, 우리나라 최초의 제1고사포병여단 완료. -8월 22일, 오산기지에서 창설식 성대히 거행. -오산기지에 도착하는 이승만 대통령, 도열된 군 장병들. -손원일 국방부장관, 정일권 육군참모총장, 이기붕 민의원의장 등이 참석.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여단장 이희태 대령에게 국기와 여단기 전달. -이승만 대통령이 전체 장병과 위엄을 자랑하는 90mm, 40mm 등의 각종 고사포를 사열. -이승만 대통령의 소련, 중공, 일본 등 침략성을 가진 나라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요지의 유시. -고사포 작동 모습. 용산역에서 열린 군전용차량인 상무호 개통식. -8월 25일, 용산역에서는 앞으로 호남선을 달릴 군전용차량인 상무호의 명명식이 거행. -군악대의 축하 연주 -이종림 교통부장관, 정일권 육군참모총장 등의 관계요인 참석, 오색테이프 절단식. -열차에 탑승해보고 내려오는 이종림 교통부장관, 정일권 육군참모총장의 모습. -태극기를 휘날리며 기적소리 우렁차게 첫출발을 하는 상무호. 군사회의. -8월 30일, 육군본부 회의실에서 손원일 국방부장관, 정일권 육군참모총장, 각군사령관, 각군단장이 참석하여 군사문제를 토의. -진지한 회의 진행 모습. 209공병대대 표창. -8월 25일, 갈홍기 공보실장이 수원송신소 전용도로를 완공한 육군 제209공병대대에 표창 수여.
상세보기정일권총리 기자회견
1965년정일권총리 중앙청 회의실에서 기자회견. -8월 25일 박대통령 특별담화에 따른 7개항 정부 방침. -정부 방침 불응학원은 폐쇄할 것. -학업과 실습에 열중하는 학생 모습.
상세보기윤 대통령 제63회 탄신
1960년윤보선 대통령 생일을 맞이하여 3부 요인 등으로 부터 축하인사를 받음. -8월 26일 경무대에서 장면 국무총리 등 3부 요인들로부터 축하 인사 받는 윤보선 대통령. -가족들과 친척들이 모인 가운데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케이크를 자르는 윤보선 대통령 내외분.
상세보기제 9차 남북적십자회담
1985년제 9차 남북적십자회담(평양) -대한적십자사 대표단 84명 8월 26일 아침 북한으로 감. -8월 27일 전날 회의, 우리측은 남북 이산가족이 직접 고향 찾고 만나는 사업 착수할 것을 호소하며 종합적인 세 개 합의 서안 제시, 또한 남한 적십자간의 업무협조와 이산가족의 편의 위해 서울, 평양에 쌍방 적십자 대표부 설치할 것을 아울러 제의 -북한은 자유왕래 문제를 위주로 하는 부분적인 세 안만을 들고 나옴으로써 이산가족 사업 실현을 좀더 단계적으로 지연시켜보자는 저의를 드러냄. -모란봉 경기장에 대표단 초청, 10만이 넘는 군중과 학생 동원 전쟁놀이 매스게임 등 정치성 있는 장면 보여주어 우리 대표단 퇴장 -28일 둘째 날 회의에서 우리측 사과 요구하며 무례한 언동 2시간 가까이 계속 -11월 26일 서울에서 제 10차 본 회담 갖기로 합의하고 성과없이 종료 -8월 29일 오후 판문점 거쳐 대한적십자단 대표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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