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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건

1950년대

※ 선택한 월/연도의 사건을 안내해 드립니다.

0822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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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년을 맞이하는 고사포여단

1956년

8월 22일, 인천 송도 육군 고사포 제1여단은 창설 1주년 기념식을 거행. -한미 고급 장성들이 다수 참석. -김용우 국방장관이 여단장에게 부대 표창장을 수여. -미국으로부터 작전권도 이양됨. -고사포여단은 실탄 사격 등으로 실력 과시. -한·미 고위장성들 참석, 고사포 전투 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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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광산의 광부 양창선씨 16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됨

1967년

갱구가 무너져 지하 125m의 땅속에 갇혀 있던 양창선씨가 16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됨. -8월 22일 갱구가 무너져 125m 땅속에 갇힌 구봉광산의 광부 양창선씨. -현장에 구조 본부 설치, 구조 작업 실시. -허리에 끈을 메고 들어가 굴입구의 흙, 돌 등 장애물 제거하는 구조반. -구출되도록 절에서 불공 드리는 가족들. -갱도속의 전화로 본부와의 통신 교환(육성). -매몰 9일째에 미군들도 구조 작업에 투입. -갱주변의 기자들, 구조반원, 가족 인터뷰. -매몰된지 15일만에 작은 구멍을 통해 약물 투입 성공. -갱주변의 많은 주민들, 양창선씨를 수송하기 위한 헬리콥터 대기. -9월 6일 구조되어 나오는 양창선씨(16일만에 구조). -진료하는 의사들, 수척한 모습의 광부 양창선씨. -기뻐하는 부인 모습과 주민들로부터 축하 받는 모습. -축하 행진하는 마을 주민들. -서울로 옮겨지는 양창선씨. -건강진료 위해 국립의료원으로 향하는 양창선씨. -도로변의 많은 시민들 축복. -양창선씨를 진료하는 국립의료원 김박사, 김박사는 양창선씨의 건강상태가 생각보다 양호하다고 말함. -바뀐 성을 되찾아 김창선에서 양창선으로 이름 바뀜. -병실에 보내온 축하 꽃과 화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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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병 소집을 개시

1950년

6.25 발발 . -북한 공산군은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무력남침을 개시 -이날 서울시민들의 대부분은 북한 공산당의 무력남침을 38선도 선에서의 단순한 무력충돌로 생각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결의 -북한은 25일 하루 동안 문산, 의정부 등 38도선 부근 주요도시를 유린,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남침 3일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 -북한의 기습 남침 앞에서 우리 정부와 국군은 속수무책 -UN군 지상부대 부산 상륙(7. 1), UN군 지상부대의 부산 상륙을 시작으로 그 증원 부대가 속속 도착 -공산치하의 서울, 공산당은 양민 학살, 요인 납치, 인민재판, 약탈 등을 자행 -공직자와 그 가족들을 무참히 학살, 피난을 못간 종교인, 언론인, 문화예술인들을 인민재판에 회부,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킴. -학병, 학생들은 책 대신 총을 잡고 전선으로 투입 -50년 8월 22일부터 국민병 소집을 개시, 52년 9월 1일 종래의 모병제에서 징집제를 도입 -유엔군은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함. -맥아더 인천 상륙작전(50. 9. 15), UN군 제10군단, 이 작전의 성공으로 마침내 전세가 역전됨. -서울 탈환(9. 28), 3.8도선 돌파(10.1), 양민들의 시체, 가족을 확인하려는 시민들. -60만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국군과 유엔군 후퇴. -흥남철수(12. 24), 공산치하에서 벗어나려는 피난민들로 큰 혼잡을 이룬 흥남부두 -10만여 피난민들은 목선, 돛단배, 널판지 등 물에 뜰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하여 흥남부두를 빠져나옴. -1.4후퇴, 유난히도 추웠던 그 해 겨울, 북한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공산 치하를 빠져나옴. -서울 시민들은 꽁꽁 언 한강을 건너 또 다시 피난길에 오름. -열차를 타고 피난길에 오르는 피난민들 -전국에서 몰려온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룬 부산 -눈물의 피난살이가 다시 시작되고 포항 난민촌에서 바닷가에 천막을 치고 생계를 유지 -국제시장(군수품 노점상)의 모습, '40계단',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 유행 -부두하역 등 피난민들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생계유지 -피난학교, 전쟁 중에도 배움만은 포기 못하고 꺼질 줄 모르는 향학렬을 불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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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명의 기능선수들은 경기에 들어감

1983년

제27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여 5연패를 달성함. -1983년 8월 9일, 국제 기능올림픽대회 결단식이 열림. -전두환 대통령, 선수들 격려, 5연패를 달성하라고 말함. -선수단, 오스트리아 린스시로 향함. -주 오스트리아 대사와 교민들, 우리 선수단을 환영 -음악의 깊은 역사가 있는 오스트리아,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브라암스의 유적 보관되어 있음. -개회식장, 선수단의 입장 -미국, 서독, 일본을 비롯한 18개국, 484명의 선수와 임원이 참가 -8월 23일 327명의 기능선수들은 경기에 들어감. -각 경기의 모습과 메달 획득현황 설명 -광고도장, 석공, 미용, 양복, 양장, 요리, 시계조립, 금은세공, 공업전자기계, RTV수리, 기계제도, 배관, 옥내배선, 동력배선, 자동차 수리, 기계조립, 정밀기기제작, 판금, 용접, 철골 구조물, 선반 등의 종목에 참가한 우리선수들 -외국 선수들과 두터운 우정을 나누는 우리 선수들 -경기후 강에서 유람선을 타는 선수들 -금메달 15개,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 특상 2개를 따내 종합우승을 차지해 5연패를 달성 -자유 중국이 2위, 오스트리아가 3위를 차지함. -정밀기계에서 금메달이 늘어나는 것은 한국 산업기술을 말해주는 것임. -시상대에 서서 기뻐하는 선수들 -세계 청소년 기능인들이 모인 친선의 밤 행사 -오스트리아의 민속 공연의 모습 -우리 선수들이 옹헤야를 부르며 다른 기능인들과 하나가 되는 모습 -8월 29일 비엔나에 도착, 교민들이 환영함. -5연패를 달성한 선수들을 축하함, 불고기 파티 -8월 30일 서독의 프랑크푸르트를 도착함. -기능학교의 갖가지 실습 기재를 돌아 봄.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여 여러곳의 문화유적을 돌아봄. -9월 1일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하여 바티칸 성당을 방문함. -스위스를 거쳐 귀국길에 오른 선수단 -9월 5일 귀국, 시가지 카퍼레이드 -9월 9일 선수단과 임원 일동은 전두환 대통령 내외에게 귀국 인사를 함. -선수들에게 산업훈장과 대통령 표창을 함. -젊은 기능인들이 세계를 제패한 것은 우리의 영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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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공청회

1962년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헌법 공청회가 열림. -헌법심의위원회에서는 국가의 헌법을 심의하는데 국민의 여론을 광범위하게 반영시키기 위해 공청회를 가짐. -학계, 법조계, 언론계, 예술계, 실업계의 대표와, 부인단체와 농촌대표 등 각계에서 추천된 연사들이 국민을 대표해서 24가지의 공청사항에 대한 의견 제시. -국민의 기본권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며, 정부형태는 대통령 중심제로서 선거는 직접선거제로 할 것과 국회는 단원제 채택하고 선거는 철저한 공영선거제를 실시할 것 등 다수. -국민의 지혜를 모으고 여론을 수렴하여, 국민 스스로를 위한 국민의 헌법을 만들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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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953
1954
1955
195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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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